제가 처음 바다거북수프를 접한 건 KSA 교내 게시판에서였습니다. 문제문은 대략 ‘하늘에 구름이 없어서 남자가 아쉬워한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었는데, 그때의 참여를 전후로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습니다. 바거수는 괴담 따위가 아니라 언어적 퍼즐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퍼즐이 풀릴 때의 ’소름‘은 식인 등의 ‘무서운’ 요소가 제공하는 그것보다 오래 갑니다. 의식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제작을 하면서 늘 ‘구름 문제’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출제했던 문제들을 돌아보면 저는 주로 트릭의 참신함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재밌는 문제를 만들고는 싶은데,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알지 못하니 ’소름 돋는' 이야기를 우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썩 괜찮은 소재를 찾으면 ‘발견해냈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최소한의 교정만 거치고 출제했습니다. 이는 좋지 못한 바거수를 양산하는 일이었죠. 달리 말해, 초기 자작 문제는 ’아이디어 뽐내기‘에 불과했고 요즘 끓이는 수프에도 그러한 면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바거수를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저와 같은 정체기에 빠지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게 큰 도움이 됐는데, 수록 바거수들 사이에 끼어 있는 칼럼들이 팀에서 그동안 연구해 온 내용의 정수이자 제작 및 출제 방법론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작자-출제자-참여자의 관계, 추리퀴즈나 스무고개와의 차이점, 루즈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법 등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칼럼에서는 트릭 하나가 문제로 변모하는 전 과정이 실려 있어 가장 유익했습니다.
저처럼 바거수 역량을 키우려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실린 문제들이 워낙 기발하기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작자든, 참여자든 바거수의 더 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첫 발판으로 삼는 것이 꽤 좋은 선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봤습니다!
p.s. 가죽 커버도 이뻐요 :)